세계문화유산 봉정사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아름다운 천등산 봉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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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봉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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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국보 제311호)

세계문화유산 봉정사
  • 분류
    국보 제311호
  • 지정일
    2009년 6월 30일
  • 시대
    조선시대 초기
대웅전의 건립 연대는 자세한 사료가 없어서 정확한 연대를 알지 못하나 건물의 일부를 해체하여 수리할 때 일부분의 묵서명이 발견되어 추정이 가능하다.
이 대웅전은 현존하는 다포계 건물로는 최고의 목조건물이라 추정된다.
대웅전은 조선시대 초기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자연석의 막돌허튼층 쌓기의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건물이다. 겹치마 팔작지붕에 다포양식을 한 이 건물은 산 중턱에 세워진 건물이면서도 평야를 끼고 있는 지역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원기둥 위에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을 돌리고 그 위에 공포를 올려 놓았으며, 주간이 넓고 오포작(五包作)이라서 포벽(包壁)이 넓게 보이는 반면 기둥은 짧게 보여 매우 안정감을 준다.
공포의 짜임은 내외 모두 2출목으로 외부쪽으로는 쇠서형이며 내부쪽은 교두형(翹頭形)으로 짜여 그 수법이 고려말 조선초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건물 전면에는 툇마루를 설치하였는데 이러한 예는 툇간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전면 3칸은 전부 개방하고 문비를 설치하였는데 궁판 받친 띠살무늬의 사분함(四分閤)이다. 이 문짝은 앞의 쪽마루와 함께 후대의 구조물이다. 기둥위의 공포도 간의 높이를 낮게 하여 기둥의 기초로부터 처마 끝까지의 간격이 다른 다포집에 비하여 작다.
가구(架構)는 일고주구량가(一高柱九樑架)인데 천장이 우물천장으로 되어 있어서 상부 가구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지붕은 팔작으로 비교적 처마 깊이가 깊고, 처마는 겹처마로서 네 귀의 추녀끝에는 활주를 받쳐 추녀마루를 지탱하고 있다. 내부의 바닥은 널마루를 전면에 깔고 내부 고주(高柱)를 이용하여 후불벽(後佛壁)을 만들었고 고주 앞에는 불단을 짜서 불상을 모셨다. 불단은 150cm정도의 높이로 만들고 청판에는 연화문을 조각하여 장엄하였다. 불단 위에 연화좌를 놓고 삼존불을 봉안하였다. 주불인 석가모니불은 높이 150cm정도이고 좌 우 협시불인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은 높이가 130cm정도 크기이다.
불단 위쪽은 아름다운 소란반자를 설치하고 그 중심에 따로 닫집을 대신해 보개를 구성하여 장엄미를 추구하였다. 보개의 천장에는 구름이 둥실 떠 있는 하늘을 두 마리의 황룡과 백룡이 날아가는 모습을 그려 하늘의 신비함과 권능을 표현하였다. 보개 아래의 본존상 뒷벽에는 불벽(佛壁)을 조성하였다. 대량(大樑)에 세운 간주(間柱)를 의지하여 벽체를 구성한다. 간주에는 아래 위로 주의(柱衣)를 입히고 그 사이에 기둥을 감싸안으며 상승하는 용을 장엄하게 그렸다. 불벽의 앞쪽에는 후불탱화인 영산회상도(靈山會相圖)를 걸었다. 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10대 제자 사천왕 등을 배치한다. 후불탱화인 영산회상도는 강희(康熙) 52년(1713) 윤(潤) 5월 1일 제작한 것으로 크기는 가로 380cm, 세로 360cm이다.
후불탱화를 보수하기 위하여 불사를 할 때에 희귀한 벽화 형태의 후불탱화가 하나 더 발견 되었는데 이 탱화는 수미단과 보개를 연결하는 주불 뒷벽에 채색으로 그려진 가로 세로 약 417cm 크기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영축산에서 관무량수경을 설하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보이는 이 그림의 정확한 제작 연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고려 변상도에서만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꽃비의 표현을 포함하여 전체적으로 고려 변상도의 상단부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구도, 벽화 테두리의 연화 당초문의 색상과 기법이 건물 내부 단청과 유사한 점, 벽화가 훼손되어 1712년에 새로이 후불탱화를 제작하여 봉안한 사실 등으로 미루어 대웅전 초창기 때 그려진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조선 초기 불화자료가 희귀하고, 조선 전기 이전의 후불벽화도 1476년에 그려진 전남 강진의 무위사 극락보전 아미타 3존도가 유일한 것임을 감안할 때, 이번에 발견된 봉정사 대웅전 후불벽화는 우리나라 불화의 도상과 양식 연구 뿐 아니라 회화사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이다.

봉정사 영산회괘불

세계문화유산 봉정사
  • 분류
    보물 제1642호
  • 시대
    조선시대 예종
탱화의 일종으로 야외에서 법회를 할 때 걸어놓고 예배하는 의식용 불화이다.
일반적으로 탱화는 법당의 본존불(本尊佛) 뒤에 후불탱화로 걸어놓고 예배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큰 재(齋)나 초파일과 같이 많은 대중이 운집하는 날에는 의식용의 큰 불화가 쓰이게 되는데, 이러한 의식을 거행할 때 법당 앞의 괘불대에 걸어 놓고 예불을 드리는 것이 곧 괘불탱화이다.
괘불은 일반탱화와 마찬가지로 재료의 취약성으로 인하여 오래된 불화는 많이 남아 있지 않고 현재 남아 있는 작품은 대부분 조선시대 후기의 작품들이다. 그러나 현재 사찰의 뜰에 남아 있는 당간지주 등을 볼 때 훨씬 오래 전부터 제작 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봉정사 소장 괘불은 강희(康熙)49년(1710)에 조성된 것이다. 견본채색(絹本菜色)으로 제작된 것으로 크기는 가로 576cm, 세로 731cm 이다.
괘불의 내용은 석가모니가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할 때의 모임장면을 그린 영산회상도이다.
괘불의 구도는 중앙에 거대한 입상의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우와 하단에 팔대보살이 시립하였으며 상단에 십대제자를 등장시킨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필법은 매우 견실하고 전체적인 색조는 적색과 청록색이 주조를 이루면서 우아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보관은 말아서 대웅전내에 함에 넣어 보관 하고 있다. 대웅전 앞에는 괘불을 걸 때 사용하는 괘불대가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의 좌우에 마련되어 있다. 괘불의 사용은 법당의 크기에 비해 많은 대중이 참여하는 법회에는 괘불대를 세우고 괘불을 걸어서 야외에서 법회를 개최할 때 사용하고, 방생재(放生齋)나 수륙재(水陸齋)와 같이 법당이 아닌 어떤 특정 목적을 가지고 특수한 장소에서 법회를 열어야 할 경우에 사용한다

삼층석탑(시도유형문화재 182호)

세계문화유산 봉정사
  • 분류
    시도유형문화재 182호
  • 지정일
    1984년12월 29일
  • 시대
    고려시대
극락전의 정면에 있는 고려시대 중엽에 조성된 탑으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2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중 기단의 방형 석탑으로서 기단부에 비해 탑신부의 폭이 좁으며 각층 높이의 체감이 적당한 반면 폭이 좁아 처마의 반전이 약하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약간 둔한 느낌을 준다.
상륜부는 노반 복발 앙화 부분은 있고 나머지는 없어졌다.
탑의 총 높이는 318cm이다.
2층 기단(基壇)을 쌓아 탑의 토대를 마련하고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과 머리장식을 얹은 일반적인 모습이다.
아래·위층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새겼다.
기단에 비해 폭이 좁아진 탑신부는 각 층의 몸돌 크기가 위로 갈수록 적당하게 줄어들면서도, 폭의 변화는 적다. 지붕돌도 높이에 비해 폭이 좁고 두툼하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일부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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